녹챠_ 2022. 1. 9. 18:58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 L4만 되면 뭐든 좋았어. 그게 너무 쉬웠다는게 문제라면 문제겠구나.




미야시로 나노카는 그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누구나 올라가는 자리가 아닌 L4를, 쉽게 올라갔다는 말도, L4만 되면 좋았다는 말도. 자신에게는 아무리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을 저리 쉽게 얘기해도 되나 싶었다. 아무리 L4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해도.




카노 에렌은 상당한 재능을 가진 것 같았다. 입학하고 단숨에 L4가 되기란 어느정도의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그가 내심 부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리 오만하게 얘기해도 되는 것인가.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곤 해도, 어째선지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났으니.





L4가 되지 못했던 어떤 아이돌이 있어서. 그 이유가 끝이란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 학교에 왔는데 너무 쉽게 달성해버려서 다음 목표를 세울 시간도 없었던 거지.




아아ㅡ. 그제껏 들어온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그래서였어. 그렇게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이유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누군가를 위해 이 학교에 왔다니, 사실 나노카의 머리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은 모두의 주목을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기에 이 학교에 와서 아이돌을 시작한 것이니.



'쉽게 달성했다'... 생각할 수록 자신의 내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L4는 커녕, 실력도 좋지 않은데. 아마 나노카가 느끼는 감정은 질투와 분노.. 인거겠지.



"그건.. 몰랐네. 설마 선배가 누군가를 위해 아이돌이 되었을 줄은. 내가 괜히 물어본 것 같네.. 혹시 불편했다면 정말 미안해."





일부러 말을 아꼈다. 괜히 '그 사람 때문에 아이돌이 된 거냐, 기가 찬다.' 이런 말을 했다간 어떤 후폭풍이 불지 몰랐기 때문이다. 또.. 말을 꺼내기 전, 상당히 고민하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떠나도 2주만 지나면 다 잊지 않겠어? 내 이름을 들어봤자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딱 그 정도일 뿐이야. 당장 내 앞이 허허벌판인데 팬들의 기분까지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구나.





.....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래. 전부 맞는 말이다. 원래 연예계란, 쉽게 잊힐 수도 있는 곳이기에. 카노 에렌이란 존재가 2주 안에 잊히지 않을거란 보장도 없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어도, 지금 이 말들에 틀린 말 하나 없지 않은가. 미야시로 나노카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조용히 말을 듣고있는 것 뿐이었다.




그런거면 다른 학교가 낫지 않았니? 네가 입학할 때도 이 학교 명성은, 알만 했을텐데.





..하지만.
나는 이 학교의 명성을.. 과분하지만 내가 일으킬 거란 자신감을 가지고, 오만을 가지고 이 학교로 왔다. 이 학교의 명성이야 전부터 알고 있었다.




ㅡ사립 시라유리 고등학교. 과거엔 유명 아이돌들을 다수 배출했지만, 이제는 추락하는 추세.. 라고.
아이돌이 될 거란 마음가짐을 다지기 전까진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또 하나의 태양이 저물고 다른 태양이 떠오르겠지, 라는 마음으로. 마치 지금의 카노 에렌처럼 말이다.



"나는... 응. 이 학교의 명성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 ..내가 이 학교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거란 말도 안되는 자신감을 가지고 왔지만. 그래서 이 모양이 된 것 같아. 애초에 내가 너무 자만했던 거지. 선배 처럼 L4가 될 능력조차 가지지 못한 나는, 어찌보면 미래를 보지 않고 이곳에 온 거라고 생각해."





나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그 시절엔 얼마나 자만이 심했는지 머리가 아파올 지경이었다.




재능, 뭐. 중요하지. 근데도 다들 노력하잖니. 솔직히 이해는 안 가지만. 너도 뭐가 되든 해보렴. 망하면 망하는 거고, 아니면 좋은 거 아니겠어?





'뭐가 되든 해보렴-' 이 말은 조금 안심이 되게 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이 학교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만 연습을 해도 실력이 웬만큼 오르지 않던 나에게는 항상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목표를 이룰 수 있는걸까.. 라고.




카노 에렌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
그런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하던 차에




"그럼.. 이건 어때? 선배가 어디서 무얼 할지는 상관없어. 다른 누군가의 목표는 대신 달성했으니, 남은 기간만이라도 선배가 하고싶은 거나 관심있는 걸 찾아봐. ..이게 상당히 짧은 기간이란건 알아. 하지만... 해보지 않고서야 모르잖아? 여러가지 도전하면서 찾아보자. 선배의 새 목표를. 누군가를 위해 목표를 이루는 게 아니라 선배를 위한 목표를 세워보자.. 이거지."


"목표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그냥.. 선배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보란 거지. 내가 관여해도 되는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선배는, 선배의 길을 걸어줬으면 해. 곧 졸업을 하게 될테지만 언제 어디서 또 만날지는 모르잖아?"




*어쩌다보니 글을 쓰게 되었는데..
답멘은 편히 이어주세요!!♡